조합원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허영굽니다.
지난 12월 8일 국회 앞 투쟁에서 구속되어 지금은 영등포 구치소에서 이글을 씁니다. 이번 민주노총 5기 임원선거에 부위원장 후보로 출마면서 따로 인사도 못했습니다. 하루 빨리 투쟁 현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내내 건강하시라는 새해 인사드립니다.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 난지도 20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96년 총파업도 치러냈고, 민주노동당도 창당하는 등 뜻있는 진전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신자본(유)주의 세계화의 높은 파고는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제 1 노총이 된 민주노총은 노동계급에 대한 방패막이로서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해 비정규직 개악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의 노동법 전면개악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요구가 정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힘이 자본의 공세라는 파고에 정면으로 대응할 조직적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분노하지 않았거나 개별 노동자들이 투쟁할 의지나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현장에서부터 실천적으로 조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정세는 신자본(유)주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일국 자본을 넘어서서 다국적 기업이 세계 경제를 단일화시켜내고 있습니다. 이를 추진하는 동력은 산업 자본주의가 아니라 투기화된 초국적 금융자본주의입니다. 무한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금융투기자본은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신자본(유)주의 구조조정은 시시때때로 전개되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체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기도 합니다만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체제 위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위기의 주기가 단축되고 위기의 증폭이 클수록 노동자들의 고통도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신자본(유)주의는 다르게 표현하면 ‘신약탈(착취)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이윤극대화는 노동에 대한 착취강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말뜸이라 할 빈곤이나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바로 노동과 자본간 대립으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 것입니다. 성장을 통한 과실을 분배함으로써 양극화나 빈곤을 해소한다는 논리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없앤다는 자본의 기만적 논리는, 모두 앞뒤가 바뀐 것이자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력화하고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자본(언론)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자본은 노동계급이나 노동운동과 타협할 의사가 추호도 없습니다. 말로야 ‘가족’이나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라 말하지만 자본의 세계화라는 파고는 그런 한가한 ‘인본주의’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독일, 영국, 미국의 금속철강노조들이 다국적 기업에 맞서 700만명 규모의 단일노조 건설을 위한 연대 협정을 체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대응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산업노조 전환 역시 일국 내 자본에 머무르지 않고 다국적 기업과 제국주의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민주노총은 새로운 정세에 대응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해야 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87년, 97년 체제를 딛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망을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망은 결코 의지나 구호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자본의 역동적인 변화발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평소에 실천적으로 ‘노동운동은 자본운동에 대응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해 왔습니다. 인간해방 이나 노동해방이라는 궁극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은 정태적으로 존재하는 자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자본입니다. 특히 오늘날 자본은 세계화되고 다국적화되고 투기화된 초국적 금융자본입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운동과 동떨어진 노동운동이 아니라, 자본과 샅바를 잡고 힘의 균형을 겨루는 노동운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자본운동에 밀착한 현 시기 정세에 기초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일입니다.
정책은 구호가 아닙니다. 실천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전략이 자본운동에 대한 대응책이라면 전술은 구체적인 도구로서 정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역량을 동원하여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전략적 목표에 기초하여 현장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결합시켜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이 정책을 가지고 현장조합원들과 토론해야 합니다. 단순한 토론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략과 목표 그리고 전술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교육을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찌든 때를 거둬내고 나태하고 패배주의적인 마음가짐을 새롭게 바꿔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자본언론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내부의 선전, 언론 작업에 대한 정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 중앙의 「노동과 세계」를 비롯하여 각 연맹, 지역본부와 단위노조 지부의 언론, 선전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난 해 자본언론에 대한 실험적이 분석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수수방관하거나 분노만으로 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언론은 왜곡을 넘어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과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민주노총 5기 집행부에 누가 당선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시기 정세를 돌파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전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 나아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약탈과 착취에 맞서 강력한 민주노총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2007. 1. 5 영등포구치소에서 허영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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