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40대 택시기사 분신자살... 왜?
조합 총회 무산 후 분신... "임금 관련 잠정협정안에 비판적이었다"
한만송(mansong2) 기자
23일 밤 9시 55분경 인천시 서구의 한 택시회사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이 회사의 전 노동조합 부위원장인 전모(42)씨가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이를 경비원과 인근 슈퍼 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시신은 인천시 서구 성민병원으로 옮겨졌다.
분신한 전씨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지난달 해고된 직장 선배에게 "형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가 전부이다.
전씨는 이날 조합 총회가 무산되자 해고된 선배 대의원과 현 노조부위원장인 우모씨 등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마지막 말을 남긴 전씨는 이들과 헤어진 뒤 분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형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개인면허 준비하던 성실한 40대
24일 새벽 장례식장에서 만난 전씨의 동료들은 전씨가 1996년경 입사해 지금까지 11년 무사고 운전을 했고, 올해 '운송사업면허'를 취득해 개인면허를 준비 중이었으며, 성실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전씨는 2002년 현 노조위원장과 함께 출마해 노조부위원장으로도 활동했으나 위원장과의 의견 차이 등으로 부위원장 일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평조합원으로서 조합일에도 열심히 임했던 사람으로 동료들에게 평가 받고 있다.
장례식장을 찾은 회사 동료들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은 "전씨는 현재 택시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착취를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지난달 해고된 동료 대의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매번 미안하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또한 "전씨는 현 인천민주택시연맹이 지난해 12월 1일 인천지역 택시 사측과 체결한 임금 관련 잠정협정안에 대해 택시노조의 피와 땀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는 비민주적인 밀실야합이라고 비판했으며, 23일 총회 무산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23일 총회는 지난달 1일 인천민주택시연맹과 사측이 산별교섭에서 합의한 잠정협정안과 관련, 조합원 투표를 통해 잠정협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총회였다. 그러나 이 회사 노조위원장 등이 찬반투표를 거부해 결국 총회가 무산됐다. 이 회사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산별교섭에 교섭위원으로 참석해 잠정협정안을 체결했다.
문제의 잠정협정안은 성과성 월급제, 업적금제, 정액제, 도급제 등 현재 인천 지역 택시에 적용되고 있는 임금체계보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임금협정안이라고 인천지역 택시 노동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전씨의 장례식장을 찾은 인천민주택시연맹 조합원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잠정협정안이 2002년 65일간의 파업 투쟁을 통해 얻은 최소한의 성과물인 중재재정서보다 훨씬 후퇴했다고 평가하고 그동안 이를 즉각 폐기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또한 변화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요금인상, 유류비 등을 감안해 완전월급제를 지향하는 임금 재협정을 진행할 것과 이를 위해 각 단위사업장의 임시총회를 즉각 소집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23일 전씨가 속한 기업의 노조도 조합 총회를 통해 잠정협정안을 조합원이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투표를 진행하려 했으나, 총회는 무산됐다.
전씨가 임금 관련 잠정협정안을 거부한 이유
문제의 잠정협정안엔 연월차 휴가 등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무사고 장려수당 5만원을 성실수당 11만원으로 교체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전씨의 동료들은 잠정협정안이 2002년 인천지방노동위원회가 인천민주택시연맹과 27개 택시회사 노·사가 10월 29일 제출한 중재신청에 따라 월평균 운송수입금 230만원 중 48%인 110만4천원을 임금으로 정하는 중재재정서보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훨씬 후퇴시켰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재재정서엔 월 임금 중 80%인 88만3200원을 정액급여로 하고 나머지 20%인 22만800원을 성과수당으로 하되, 성과수당은 운송수입금 실적에 따라 별도의 산정방식을 적용, 차등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성실근무를 유도하기 위해 월 최저 운송수입금을 200만원으로 정하는 한편 성과수당 비율의 가·감산제도 도입됐다.
이에 따라 운송수입금이 200만원 미만일 경우 임금총액은 월 운송수입금의 40%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단계적인 감산율이 적용, 산출됐다. 하지만 260만원 이상인 경우 최고 3%까지 성과수당 비율이 높아지도록 규정돼 있다. 이외에도 상여금은 1년 이상 근속자의 경우 기본급의 450%, 6개월 이상 근속자의 경우 200%를 지급하고, 노동일수는 월별로 24∼26일이며, 노동시간은 하루에 7시간 20분, 1주일에 44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한편 경찰은 전씨가 평소 내성적이고 술을 많이 마셨다는 주변 진술 등을 근거로 분신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가정불화가 있었는지, 노사문제와 관계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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