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탐욕'의 대가를 왜 노동자들이...
빚내서 인수한 대우건설이 발단, 총수일가 경영권은 '그대로'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정리해고.임금삭감 등 금호타이어 사측의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결의한 금호타이어 사태는 한 재벌 총수의 '탐욕'에서 시작됐다.
지난 2006년 6월 박삼구(65)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금호산업의 대우건설 인수를 성사시켰다.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해 형제 경영의 전통대로 금호산업.금호석유화학 두 축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켜 자신이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대우건설'을 가져가고, 동생인 박찬구(62) 그룹 석유화학부문 회장에게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을 내준다는 게 박삼구 명예회장의 구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호그룹(아시아나항공)의 경쟁사인 한진그룹(대한항공)을 제치겠다는 박삼구 명예회장의 욕심도 빚을 내서라도 대우건설 인수를 강행했던 요인 중 하나다. 박삼구 명예회장이 대우건설 인수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6조 4225억원.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박 명예회장은 대우건설 주식 39.6%를 담보로 내놓고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3조 5천억원을 차입해 인수를 성사시켰다.
대우건설ⓒ 민중의소리
인수 대금의 절반이 빚인 셈이어서 당시에도 무리한 인수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박 명예회장은 2008년 1월 대한통운까지 집어 삼켰다. 단숨에 금호아시아나는 재계 랭킹 11위에서 8위로 뛰어 올랐다.
2009년이 되자 박삼구 명예회장의 '욕심'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금호는 국내외 금융기관에 대우건설의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을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대우건설 주식을 2009년 말에 이 가격에 사준다는 조건(풋백옵션)으로 3조 5천억원을 빌렸다. 그런데 주당 6천원대까지 떨어졌던 대우건설의 주가는 최근까지도 약속했던 주가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결국 4조원으로 불어난 빚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를 비롯한 금호아시아그룹 전체를 위협하게 됐고 박삼구 명예회장은 대우건설을 토해냈다.
이 와중에 동생은 형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며 자기 몫을 챙기려 했다. 처음부터 형의 대우건설 인수를 못마땅하게 여긴 동생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6월 15일부터 금호산업 주식을 팔고 금호석유화학을 가져가져 위해 지분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박삼구 명예회장은 급기야 지난해 7월 28일 동생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에서 해임해버렸다.
'탐욕'은 '형제의 난'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동생을 자른 날 박삼구 명예회장은 이름뿐인 그룹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금호산업.금호석유화학.대한통운.대우건설.아시아나항공의 대표이사직은 내놓지 않았다. 명분은 '대우건설을 팔고 빚을 다 갚아 그룹을 정상화시킬 때까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경영권을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지만 이름도 낯선 몇몇 외국자본의 수 차례 인수 시도에도 정작 금호가 토해낸 대우건설을 가져갈 만한 큰 손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채권단에서 대우건설 매각주간사를 맡은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지만, 경영권을 잃을 것을 걱정했던 박삼구 명예회장은 계속 시간을 끌었다.
빚을 갚아야 하는 12월이 가까워지자 박삼구 명예회장은 또다시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행태를 보였다. 대우건설의 빚때문에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경영권이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박 명예회장은 지난해 12월 21일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의 주식(33.5%) 중 12.7%를 금호석유화학에 매각했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라 빚쟁이(채권단)들에게 시달릴 금호산업 대신 금호석유화학을 알짜기업들의 모회사로 대체해 경영권을 끝까지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금호타이어 공장 앞 전경ⓒ 금호타이어지회
그리고 '운명의 날'인 지난해 12월30일. '탐욕'의 희생물이 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근거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반면 9일 전 박삼구 명예회장이 미리 손을 써놨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자율협약을 맺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심지어 산업은행은 박 명예회장에게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최대 5년 동안 경영권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정작 사고를 쳐 진작 '아웃'당했어야 할 총수 일가 대신 '워크아웃'의 혹독한 시련이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물론 박삼구 명예회장의 경영권을 지켜줬던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켜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12월부터 금호타이어 광주.곡성.평택 공장 노동자 5000여명의 월급이 나오지 않기 시작하더니 178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회사를 떠났다. 협력업체 180여곳의 밀린 결제대금도 6천억원을 넘어섰다.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사이에도 시간을 끌어 오던 박삼구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는 채권단의 압력에 2월 8일 계열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과 처분권을 채권단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박찬구 전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경영권과, 박삼구 명예회장의 금호타이어.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줬다.
이튿날 채권단은 곧바로 금호타이어 노조가 '채권단의 구조조정 요구를 조건없이 수용하고 생산차질을 초래하는 쟁의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동의하지 않으면 신규 운영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동의를 거부한 노조에 대해 사측은 한 달동안의 교섭 끝에 결국 기본금 20%, 상여금 200%삭감, 아웃소싱, 3년간 임금 동결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사교섭이 결렬되자 사측은 3월 3일 1199명(도급화 1006명, 해고 193명)의 노동자들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돈도 안 받고 뼈빠지게 일했는데 살인메시지를 던진"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은 8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총수 일가의 '탐욕'의 대가를 왜 우리가 치러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문자 통보된 사측의 정리해고 통지서.ⓒ 민중의소리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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