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용역소장, 탈의실 불쑥 “보는 데서 옷 갈아입어”
ㆍ교수는 “인사 말라” 외면… “노조설립은 꿈도 못 꿔”
서울의 한 대학 청소노동자 오모씨(55)는 지난 여름 일을 하다 쓰러졌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쉼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쓸고 닦는 중노동에 몸이 견뎌내지 못했다. 입원치료를 받고 돌아온 오씨에게 용역업체 소장은 “죽을 때도 쓰레기통을 안고 죽어야지”라고 잔소리를 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배모씨(60)는 몇 달 전 한 교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가 “다음부터 나보고 인사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같은 대학 박모씨(51)는 사람들이 청소노동자를 벌레 같은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대학생들도 많다. ‘경희대 쓰레기녀’ ‘연세대 미화원 폭행 패륜남’같이 청소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한 대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최근 인터넷을 달궜다.
성희롱도 자주 발생한다. 지난 5월 서울지하철 9호선 한 역사에서 용역업체 청소반장이 한 여성 청소노동자의 허벅지를 만진 일이 있었다. 피해 노동자의 계속된 항의에도 성희롱 가해자 처리를 미루던 용역업체는 6개월이 지난 뒤에야 청소반장을 권고사직시켰다. 그러나 이 청소반장은 이후 다른 역으로 발령났다. 이화여대 청소노동자 신모씨(62)는 “남성 용역업체 소장이 휴게실에 불쑥 들어오거나 성희롱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것이 여성 청소노동자의 현실”이라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얘기한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별받는 최하위직이며 ‘밑바닥’이란 것이다. 이들이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것은 여성인 데다 비정규직이며 나이도 많기 때문이다. 고용·노동시장에서 3대 약점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구조조사에 따르면 2009년 청소노동자 40만6633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81.6%(30만8220명)였다. 평균 연령은 57.2세로 41%가 60세 이상이다.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통상 대학이 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업체가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어 용역을 제공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계약은 대개 1~2년 단위다. 계약이 끝나면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청소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렇다보니 노조 설립도 쉽지 않다. 노조 설립 허용 여부는 원천적으로 재계약권을 가진 원청업체의 손에 달려 있다. 잘리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생계형 가장들이다.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월 85만여원)에도 못미치는 평균 74만3000원(여성의 경우)을 받는다. 교통비와 밥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마지막 권리를 찾기 위한 입바른 소리는 묵살되거나 아예 해고로 직결된다. “학교나 병원 등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 노조 설립 역시 비정규직 시스템에 막혀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근본적으로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박홍두·주영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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