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대법원 판결 후속조치 없어 혼란… 정부, 이달 중 지침 마련키로
인천의 한 제철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ㄱ씨는 이달 들어 제철소 구내식당에서만 점심을 먹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먹고 싶은 식당과 음식을 고를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메뉴 선택권을 잃었다. 소속된 청소업체에서 현금으로 지급하던 식대를 갑자기 식권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근무일마다 하루 7000원씩을 밥값과 커피값 명목으로 매달 한 차례씩 모아서 받아왔는데 연초에 느닷없이 4000원짜리 구내식당 식권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매달 25일을 꼬박 일하므로 월 식대는 17만원가량이었다. 전체 월급이 15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ㄱ씨는 지난달 대법원의 통상임금 확대 판결을 떠올렸다. 줄곧 현금으로 지급돼온 식대를 식권으로 바꾼 것은 그 판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돈은 명칭과 무관하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했고, 식대는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이미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있었다.
ㄱ씨는 “식대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평균임금이 오르니까 퇴직금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회사에 따져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관할 지방노동청까지 찾아가 식대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를 물었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동청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 아직 정부에서 아무런 지침 변화가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다”고 할 뿐이었다. ㄱ씨는 “울화통이 터지지만 근거가 없으니까 따지기도 쉽지 않다.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억지로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후 정부의 후속조치가 늦어지면서 현장에서의 혼란과 사용자 측의 변칙·편법적인 대응이 나온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노총 노동상담소에서 일하는 최현아 노무사는 “한 회사는 조건 없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한 대법원 판결을 악용해서 최근 매달 일정기간 근무한 경우에만 상여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꿔 교묘하게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임·단협이 시작되면 회사 측이 정기상여금을 성과급으로 바꾸려는 등의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례의 법리 분석과 관계부처 논의, 노사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신속히 법령 개정을 추진하되 그 이전이라도 혼란을 방지할 수 있도록 이달 중 관련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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